자취일기 셋

2019. 9. 19. 01:03어느 날

 

01

종강했다고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개강한 지 벌써 3주째다.

이곳에 돌아오고 난 후의 생활을 가만히 되짚어보았다.

 

조용한 회색빛이 돌며, 밤엔 주황색 불빛이 조용히 들어차는 방 안엔

끼익-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자그마한 선풍기,

다음 날 비가 올 거라고 알리기라도 하듯 쭈굴거리기 시작하는 벽,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지고 있는 연회색빛 옷장,

축축함을 조금이라도 이겨내보려 구매했던 자그마한 제습기,

한 주의 시간표를 그려 붙여놓은 냉장고,

엄마 취향이 가득 묻어있는 딸기우유색 커피포트,

아빠 취향으로 사다준 자그마한 인형들.

 

소소하다면 소소하고, 보잘것없다면 보잘것없는 것들.

나랑 제법 닮아있었다.

 

이 방을 처음 계약했을 때, 내 방이 생겨서 정말 기뻤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쭉 동생과 함께 한 방을 공유해야 했으니까.

내 공간을 내 맘대로 꾸밀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자취생이라는 타이틀이 참 흥미로웠던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이곳에 돌아왔을 때, 잠깐동안 그 기분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벽에 새로운 포스터와 엽서들을 붙여봤고, 방학동안 찍었던 사진들도 새로 붙였었다.

 

그리고선 뒤로 한걸음 물러나 붙인 것들을 바라봤다.

 

내가 준비하고, 내 공간에 가져올 수 있도록 하나하나 보관해 왔던 것들이

제자리란 건 없지만 꼭 제자리를 찾아간 것 마냥 좋아 보였다.

그걸 바라보는 나 또한 그랬다.

 

새삼 혼자 있는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했던 것 같다.

 

02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혼자 있는 시간이란 놈은 때때로 외로움이란 커다란 돌덩이를 이고 불쑥 찾아오곤 했다.

되도록이면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03

사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주머니 안에 외로움이란 돌덩이가 한 덩이 한 덩이씩 들어차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누구는 너 혼자서 잘하잖아. 하고 말하더라.

잘하는 척했을 뿐인데 어쩐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계속 혼자서 뭘 해왔더니, 이젠 진짜 혼자가 되어 버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나는 앞으로도 혼자 무언가 하는 걸 잘해야만 한다.

그래야 덜 외로울 테니까.

 

04

요즘은 부쩍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어렸을 적에 좀 부렸어야 하는데…. 어릴 때 안 했더니, 나이 먹어서 싱숭생숭한 게 한둘이 아니다.

 

좀 크고 났더니 어리광을 부리는 게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자꾸 구석으로 미뤄놓고 꾹꾹 눌러놨더니

얘가 별거 아닌 일에도 툭툭 튀어나오더라.

 

그게 우울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한창 상담받을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제 감정을 온전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그 친구를 잊고 살았을 때, 우리가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 친구를 온전히 살피기 시작했을 땐,

이미 분노나, 슬픔의 감정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뻔한 얘기지만.

삶에 치여서 나를 돌보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다 보니 나보다 남을 더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네 잘못은 이만 떨쳐버리기로 하자.

 

05

누군가 글을 봐준다는 거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물론, 그냥 접속만 했다 나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궁금해서 함 들어와 본 사람들뿐이라도….

 

누누이 말하지만 글을 쓰는 데 자신은 없다.

전문적으로 배워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아서

그럴싸한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그래서 이런 부족한 문장들을 읽어주는 사람들에 있어 참 고맙다.

 

06

오늘 저녁엔 제법 가을바람이 불었다.

작년 이맘때 가을엔 무엇을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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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다보니 글이 좀 길어졌다.

사실 티스토리 글은 PC로 봐야 예쁜 것 같다.

나는 매번 PC로 보는데 모바일로는 테마가 다 깨져서... 아쉽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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