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일기 둘

2019. 7. 3. 19:45어느 날

01

5월 21일에 첫 글을 작성했는데, 벌써 7월이다.

'벌써'라는 단어가 퍽 잘 어울린다.

처음 종강이란 걸 했다.  빨리 종강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요령이 생긴 것도 같다.

하지만 종강은 운이다.

 

02

" 어떻게 지내? "

라는 말을 꽤 어려워하는 편이다. 상대의 안부를 묻는 일이란,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정의하는 계기이기도 하며, 동시에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상태의 방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물어오는 안부 문자들이 참 고맙기도 하고,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순전히 내 생각에서 비롯되어 내게 짊어지는 무게인지라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기도 뭐한데. 생각의 틀을 바꾸면 쉽게 해결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틀이라는 게 한번 굳혀진 비누처럼 모양만 뭉그러질 뿐 쉽사리 부서지질 않는다.

 

03

다들 삶이 힘겹고 버거운데 안 그런 척 버티고 사는 걸까? 동생의 삶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내 속 얘기를 안 하잖아."

동생이 담담히 내게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니 속이 궁금해서 속 썩이고 사는 사람이 몇인데.

당당하다고 말해주고 싶지 않다. 당당하다기 보단, 답답했으니까.

 

그 시절 나도 그랬다고 엄마는 말했다. 너도 똑같이 답답히 굴었어.

하지만 내가 답답한 부분은 아마 엄마가 말한 부분과는 다른 부분일 테다. 나는 내 속을 표현하지 못해 곪아 터진 상처에 아프다고 울부짖었던 것뿐이고, 내 동생은 그걸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게 내가 동생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다들 삶이 힘겹고 버거운데 안 그런 척 버티고 산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그 생각에 큰 변화는 없다만, 다들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런 삶이 당연해져 버렸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런 삶이 어른의 삶인 척 생각하고 굴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디 너는 그렇지 않았으면 했다. 너는 답답한 삶을 살지 말았으면 했다.

 

04

이 글을 언제 올릴지는 모르겠다.

사실 쓰고 싶었던 글감은 따로 있었는데, 수정하면서 잊어버렸다.

내가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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