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1. 23:31ㆍ어느 날
01
20일은 성년의 날이었다. 20년 인생에 하루뿐인 특별한 날이었다.
10시쯤이었나, 친구가 급하게 나를 깨웠다.
" 야! 일어나봐! 어머님 오셨어! "
엄마아빠가 성년의 날이라고 아침부터 차를 몰고 서울까지 올라왔더라.
전날까지 학술답사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고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 자버려서
엄청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정신없이 문을 열어줬다.
나도 몰랐던 내가 성년이 되는 날.
삶에 치여 살다보면 특별한 날은 쉽게 잊혀지고 만다고들 하던데.
그리고 이런 생각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고들 하던데.
그런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02
차를 타고 올 때도 있지만, 보통 우리 엄마아빠는 기차를 통해 서울로 온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아빠를 기차 밖에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기차가 출발하기 3분 전 즈음, 계속 쳐다보고 있는 내가 신경쓰이는지 엄마가 가라고 손을 내젓는다.
싱긋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엄마아빠가 꼭 사랑한다는 입모양을 만들어낸다.
이때가 이렇게 슬플 수가 없다.
사랑한다는 말 몇마디가, 다음에 또 올게 하고 건네는 입 모양들이
뒷통수를 무언가 커다란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그렇게 나를 마주해 온다.
결국 등을 돌리고 만다.
밖이 아니었다면 애처럼 엉엉 울었을거야.
매번 그런 생각으로 엄마를 보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나도 외로워 하고 있었구나.
모든 이별을 마주하는 일은 쓰리다.
누군가를 보냄과 동시에,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이니까.
03
외로움과 마주하지 않으려 애쓰는 시간들이 많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구구절절 사연들을 읊어보기에 여긴 너무 넓고, 밝은 것 같네.
그래서 이야기 하지 않으려 한다.
술을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못해서 싫어하기도 하지만,
술을 먹으면 나를 챙기는게 힘들어져서 싫어한다.
어떤 사람은 술 먹으면 솔직해져서 좋다고 하더라.
웹툰이나 드라마에서도 그런 소재들이 줄곧 쓰이기도 하지않나.
진심을 알게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그런.
내 삶에 그런 일은 아마 죽어도 안올거다.
그냥 나는 취하면 내 감정 추스리는게 쉽지 않아서 싫다.
사실 이건 너무 안좋은 습관이다.
인생을 피곤하게 살 수있는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기 감정을 표현해야 편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못하고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싫어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나는 술 먹으면 꼭 화가나고 울고 싶더라.
이게 내 진심인가 싶다. 평소 내 상태인가 싶고.
앞에 누가 앉아있건, 이건 민폐다.
내 감정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일은 곧 민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먹기 싫다.
이런 사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