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일기 일곱

2020. 3. 9. 03:26어느 날

♬Letter(Winter ver.) - Yiruma

 

00

오늘은 오래간만에 집 밖을 나가보기로 했다.

날씨가 하도 좋다길래.

 

홈플러스에 가려고 카트를 챙겼다. 

(집 앞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땐 장바구니를 챙긴다.)

홈플러스에선 평소에 미뤄뒀던 큼지막한 것들 위주로 구매하기 때문이었다.

카트가 내 키에 비해 좀 짧아서 불편하지만, 무거운 것보단 훨씬 나았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커피도 한잔 손에 들었다.

 

막상 홈플러스에 가니 오늘이 휴무일이더라.

원주는 수요일이 휴무일이라서, 당연히 수요일인 줄 알았다.

내가 알아보고가지 않았던 탓이었다.

 

할 수 없이 집 앞 마트에 들러 장을 봐야 했다.

집 앞 마트는 좁고, 4시 - 6시쯤엔 굉장히 붐벼서 발 디디기도 힘든데 말이다.

그런데 하필 나는 카트를 끌고 있었고,

커피 때문에 손도 없었다.

 

카트는 짧아서 끌고 갈 때마다 발 뒤꿈치에 계속 치였고,

통로는 좁아서 지나다닐때마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오늘은 빌어먹을 날씨도 좋았다.

폐를 안끼치려고 허둥지둥 카트를 들었다 놨다 했더니

금세 더워졌고, 마스크를 꼈더니 숨쉬기도 힘들어서 정말 너무 답답했다.

 

집에 가는 길이 옛말 따라 천리 같았다.

 

 

 

01

별거 아닌 일인데

우연이 겹쳐진 것뿐인데.

 

집에 돌아오고 보니 왜 그렇게 속이 상하는 지 모르겠더라.

 

내가 이만큼 힘들고, 피곤했다고

이야기할 데가 아무 데도 없었다.

 

이따금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은 이런 순간들이다.

 

함께 고민해줄 사람이 없고, 당장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그런 사소하고 이상한 순간들.

 

떠오르는 얼굴들은 많은데,

막상 둘러보면 그 얼굴은 온데간데없던 순간들.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시간들.

 

 

 

02

책상 앞 바닷물이 짜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났다. 찔끔.

 

 

 

03

거리에서 혹은 카페에서 "그냥…."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청아하게 들려올 때가 많다.

퇴근길에 부모는 "그냥 걸었다"는 말로 자식에게 전화를 걸고

연인들은 서로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라며 사랑을 전한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

 

때론 이유가 너무 많아서 '그냥'이라고 뭉뚱그릴 수도 있겠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이라고 얼버무릴 수도 있겠고.

 

'그냥'은 정말이지 늘, '그냥' 이 아닐 수 있다.

 

그냥…. 나는 그렇다고.

 

 

 

04

언어의 온도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눈여겨봤던 책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조금 읽어보기도 했었다.

 

그때 기억으론, 내가 기대하던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책일 수도 있다만,

적어도 나에겐 같은 이야길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근래 에세이가 읽고 싶어서 (원래도 에세이만 읽지만^^)

'에라이, 지금 읽어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 하고 중고로 구매해버렸다.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음, 정확히는 별로였지.

분명 챕터가 나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진 60퍼센트의 이야기가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로 귀결되었고,

나는 '언어'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생각이나 관찰을 기대했으나 언어 관련 이야기는 정말 몇 개 없었다.

 

그 견해들이 납득이 가면 내가 이렇게 푸념하진 않을 테다.

가끔은 그러려니 넘겨도 될 것들에 이야기를 애써 덧붙이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쾌했다.

(작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봐야 하는 게 맞지만)

좋아요 받으려고 너는 먹을 때도 예뻐 / 화낼 때도 예뻐 / 멍 때릴 때도 예뻐하고 염불 외는 놈들같이... 왜 그러지?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전화를 받는 중년 남성을 봤는데 왜 굳이 그에게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거들먹거리면서, 이해해주려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굳이 꽃에 비유하는 것도 싫고,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써놓은 것도 짜증 나고. 아픈 와중에 꽃 취급받아야 하나? 아, 5년 전 글이라 그런가? 

 

온도가 느껴지는 문장들도 있었다만, 개인적으론 시간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훨씬 많았다는 게 결론.

앞으론 여성작가 에세이 위주로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05

제삼자에 관한 글이 쓰고 싶다.

제삼자가 보고 싶다.

나랑 네가 아닌, 다른 누군가.

그 사람의 시선에서의 너랑 나.

그런 허술한 글.

 

 

 

06

화가 많아지는 요즘.

코로나 주겨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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